[공포경험] Mr.C 와 담배, 그리고 찻잔
IP :  .250 l Date : 17-12-20 02:35 l Hit : 3806

(공포방 부흥을 위한 썰 2 ... 사족이 너무 길다 싶으면 "그리고 초 2" 부터 읽어주면 고맙겠어! )


조금 개인적인 썰이야.

1998년도 일이야. 외환위기가 한창 한국을 강타할 때, 나냔은 해외에 있었어.



한국은 아니었지만 IMF 타격을 받은 나라 중 하나라 아마 부모님은 그 시기를 잘 기억하고 계실거야.

하지만 그 때 겨우 7살이었던 나에게 IMF란, 그저 노란 컵에 적힌 문구였을 뿐... 난 생각 없는 초등학생이었을 뿐이고.

(한국에서 받았던 접이식 컵이었는데, 외환위기 관련 문구가 적혀있었어. 무슨 취지였는진 기억 안남)



그 때 내 주 관심사는...  KFC 매쉬드 포테이토 컵, 맥날 해피밀 먹으면 주던 각종 장난감, 폴리 포켓, 실바니안 패밀리..

그리고 영알못이던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던 Mr.C 였어.



Mr.C는 내가 그 시절 다니던 국제학교의 담임 선생님.

어렸을 때라 기억이 온전치 않지만, 진갈색 머리에 키가 크고, 약간 호리호리한 인상이셨던걸로 기억함.

영어의 abc 도 모른체 __국으로 넘어갔던 나는, 매일매일 수업 시간 내내 멍때리며 눈알만 또르르 굴렸음. 정말 하나도 못 알아들었거든...

수업을 따라가긴 고사하고, 한국말이 어눌한 교포 한국애 시종노릇까지 해야했어 ㅋㅋ 심각하지?

그 아인 내가 영어 못하는걸 알고, 놀다 수틀리면 영어로 솰라솰라하며 날 따돌렸었거든. (여X아 잘 지내니? ^^ ..)



점점 말수가 적어지는 날 두고 엄마는 걱정되셨는지 Mr.C를 과외쌤으로 섭외해오셨어.

일주일에 3번 정도 Mr. C는 매번 우리 집까지 오셔서 발음, 문법, 단어, 작문 등등을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가르쳐주셨고

난 생존을 위해 정말 열심히 따라했던걸로 기억해.



아니, 사실 기억 안나.



후술할 내용의 충격 때문인지, Mr. C와 지낸 시간이 1년에 가까웠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 웬만큼 선명히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Mr. C가 잘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건 난 그 사람 덕분에 1년만에 ESL을 탈출하고 다른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어.

난 지금도 타국에서 일하고 있는데, 내가 일군 모든것의 일부분은 Mr. C 덕분이라고 생각함. 정말 고마운 사람이야.

결론은 그렇게 1년의 과외 후 숨통과 말이 트인 난 드디어 다른 친구들도 사귈 수 있게 됐다는 것.




그리고 초2.



어느날 반 친구 한 명이 잘라낸 신문지 쪼가리를 흔들며 등교하더라구.

큰일났다며 이거보라고, 다들 모이라고, 여기 모이라고.



애들이 웬만큼 모이자 그 아이는 신문지를 우리 코앞에 들이밀었어.

사고현장 사진이었는데, 이어지는 말이 :

“Mr.C’s dead. He burned to death.”

내가 그때 당시 거주하던 __국은 사고현장 사진을 적나라하게 올려버리는 옐로우 저널리즘의 아주 안좋은 면을 답습하고 있었는데,

좀 너무하더라. 필터링 하나 없던 그 현장 사진은 어린 마음에 너무도 큰 충격이었어.

새까맣게 불탄 방, 그을린 침대, 흑백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생생한 공포.

Mr. C의 사고 현장이었어.



Mr.C는 흡연자였어. 사실 아이들 앞에서 피는 모습은 본적이 없었고

과외할 때도 냄새가 안났던 것 같지만 흡연자였나봐.



경찰이 추측하길, 침대에서 한개피 태우다 잠이 들었을 가능성이 높대, 주변에 담배 꽁초랑 재떨이가 있던걸 보면.

그리고 깨어있었다면 불이 붙었을 때 무슨 조치를 취했겠지.

기사 사진에 시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사실은 있었던 것 같은데, 없었었기를 바라고.

그 날 집에 돌아와서 한동안 큰 충격에 빠졌었어.

산만하고 끈기 없던 나에게 아에이오우 발음 하나하나, 내 실수 하나하나 몇번이고 몇번이고 짚어 넘어가며

인내심으로 날 가르쳐준 Mr.C가 화재로 돌아가시다니.

그 화재 현장이 하필이면 신문에 나서, 그 장면을 보게 되다니.



지금 생각하면 죄송스럽지만, 슬픔보다 두려움이 더 빨리 찾아왔고

그 사진 덕분에 한동안 무서운 꿈을 많이 꿨던걸로 기억해. 무서웠어.

소중한 주변 인물이 그런 끔찍한 결말을 맞이한게 무서웠고, 사진을 보는 그 자체에서 오는 원초적인 공포가 너무 컸어.

그 신문지를 잘라온 아이를 원망했던 것 같아. 많이 원망했어.

한동안은 무서워했던 것 같네.




그 즈음, 아이들 중심으로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도서실 쪽 복도 끝편에 어둡고 침침한 interculture 방이 있었는데, 자주 쓰이는 방이 아니었거든.

가끔 수업을 하는 날이면 그 좁은 방에 아이들이 빙 둘러 앉아 이것저것 만들곤 했는데, 불을 켜도 차가운 방 있잖아?

차가운 느낌의 전구 때문이었는진 몰라도, 방 전체가 음침해서 더운 나란데 손도 시렵고,

아무튼 굳이 사서 가고 싶진 않은 찜찜한 방이 있었음.



그런데 그 방에서 Mr. C의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도는거야.

혼자서 복도를 가로질러 작은 창문으로 방을 들여다보면…  Mr. C를 볼 수 있다는 거야. 

안 그래도 복도 맨 구석탱이에, 수업 없을 때 불을 꺼두기 십상이라 독서실 갈 때면 쳐다보기도 무서운 방이었는데.

뭐, 그래서 애들이 괴담을 지어냈을 수도 있고.



친구들은 며칠간 이 괴담으로 서로를 겁주다가 결국 다같이 확인해보자며 점심시간에 우리들끼리 급식실을 빠져나왔어.

나 포함 다섯여섯명 정도가 무리지어 계단 밑까지 갔는데,

반절은 호기심, 반절은 동조 압력으로 마지못해 따라갔던 것 같아.

한명씩 혼자 올라가서 보고 오는 동안 나머지 애들은 계단 밑에서 망을 봐주기로 했어.



난 겁도 많았지만 Mr.C도 좋아했기에, 저 상황에 거부감과 호기심이 동시에 들었어.

괴담은 싫지만 정말 Mr.C라면 한번쯤은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그래서 마지막에서 두세번째로 올라가기로 자원했음.

먼저 올라간 애들 중에 진짜 뭔갈 봤다며 호들갑 떠는 애들도 있었고,

뭐 아무 것도 없었는데? 란 애들도 있었고.

그래서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한편으론 미심쩍기도 했어. 바보짓하는 기분도 들고.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을 다 올라가면 전등 하나 없이 탁 트인 공간이 있었는데,

1층 복도를 바라보는 쪽으로 창문이 열려 있어서 빛이 아주 살짝 들어왔어.


이쪽 동 2층은 수업할 때만 개방되곤 했는데, 평소엔 독서실 빼곤 다 암전. (1층은 교사실, 오피스)

낮에 닫힌 공간을 상상하면 돼.

분명 밖이 밝은건 알고 있는데, 그 빛이 희미해서 어두운 공간이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거.

밤에 어두운건 당연하지만, 낮에 어두우면 그 괴리감 때문에 더 어색하게 다가오잖아.

그 어중간한 공간의 왼쪽으로 복도가 쭉 있었는데, 정면으로 마주본 기준 왼쪽에 독서실이 있고 오른쪽에 작은 방 여러개가 있었어.

복도 맨 끝 오른쪽에 interculture 방이 있었음. 그쪽은 독서실 빼곤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아서 엄청 어두웠음.

그 날 난 독서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 의지하며 복도 끝까지 갔고 까치발을 들어 창문 너머를 들여다봤어.



방은 어두웠어.

어두워서 ㄷ자 대형으로 배치된 책상과 의자의 윤곽이 거의 보일락말락했었고

더운 나라였지만 사방이 그늘진 곳이라 서늘했음. 지금 생각해보면 독서실 쪽 에어콘이 새어나왔을지도.

유리에 코를 박고 쳐다봐도 거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찰나

교탁 쪽에 뭔가 두둥실 뜨네.



처음엔 형체를 잘 알아볼 수 없었는데

계속 보니 찻잔이었어. 커피잔이랑 찻잔.

커피잔이랑 찻잔이 새하얗게 둥실둥실 뜨는데,

그 어둠속에 있단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뽀얗게 빛나더라.

그게 교탁 끄트머리에서 살며시 떴다가 가라앉다 떴다가 가라앉다가 허공에서 춤추듯 쉬이 내려앉았다 떴다--



내가 뭘 보고 있나 자각했을 때쯤 난 이미 달리고 있었어.

마구 달려 계단에 도착하니

질겁하는 날 보고 친구들은 뭐 봤어? 뭐 있었어? 선생님 봤어? 울어?


싹 다 무시하고 통통통 계단 내려가는데 다리 힘 풀리고 눈물은 나고 확 맥이 풀려서 정말 울었다.

애들한테 뭐가 하얗게 둥실거렸다고 하니까, 마지막 한명인가가 확인해본답시고 올라갔는데

찻잔이고 뭐고 없었고 아무것도 안 보였대.

불도 다 꺼지고 주변도 어두워서 안에 아무것도 안보였다며.

다들 무얼 봤는지 토론하다 수업벨이 울려서 다들 교실로 돌아갔어.



집에 돌아가서 엄마한테 자초지종 얘기했다가 혼났어. 뭐하러 그런짓을 하냐고.

어렵게 설명하시진 않았는데, 그런건 하지 말라고 한 소리 들었지.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엄마는 다른 과외 선생님을 구해오셨어. 이분은  Mr. M.

(키가 엄청 크고 영국인이었는데, 무지 깐깐하고 가르치다 맨날 내 방 화장실에 두루마리 휴지 들고가서 똥 싸셔서 좋은 기억으로 남진 못했음.)





여기서 사실 썰은 끝.


... Mr.C가 뭐. 커피 애호가였다거나 차 애호가였다거나 그런 연관성은 없는데

Mr.C로 말미암아 Mr.C로 끝났던 경험담이라.

그때 당시는 어려서 그랬나, 엄청 무서웠는데 역시 또 적고보니 그저 그러네.

사실 내 기준 가장 큰 충격은 비보, 그리고 사진이었어.



별거 없는 내용이지만, Mr.C를 기억하는 취지에서 써보고 싶었어.

난 아직도 암호 질문에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 혹은 “제일 기억에 남는 선생님?” 이 뜨면 Mr.C를 씀.





PS: … 근데 미친. 사진 찾아보니 학교 왜 이리 바뀌었니?
 
주소 보면 안 옮겼는데, 병원 옆에 위치는 똑같은데 건물 구조가 아예 다르네….

첨부한 사진은 내가 통학했을 시절 초등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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